나라의 경제를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미 FTA로 인해 어떤 변화, 어떤 충격이 초래될 것인지, 이를 흡수할 내적 역량이나 대비책을 갖추었는지 치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한․미 FTA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미래로 가는 다리(Bridge to the future)’가 되어야 한다.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다리(Bridge of no return)’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미 FTA의 독소조항은 한국경제를 블랙홀에 던질 것
우리는 지금 세계사적 격변의 한 가운데에서 대한민국의 진로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한․미 FTA 문제의 처리는 우리 경제 ․ 사회의 진로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한․미 FTA는 한 번 비준을 완료하면 우리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되므로 독소조항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신자유주의 심장부인 미국 월 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이 파산하고 있다.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가공의 신용창출로 막대한 돈을 벌어온 금융자본주의를 반성하면서 신 브레튼우즈 체제9)와 같은 새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경제회복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무분별한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같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종하려 한다. 그 결과 미국발 금융 위기 앞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한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제2의 외환위기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우려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를 비준한다면 우리 경제를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우산 속으로 더욱더 깊숙이 편입시키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한․미 FTA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세계화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란 각국 시장의 비효율성을 걸러내어 효율성과 경쟁력으로 번영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국이 경제 ․ 사회적 혼란의 대가를 치루더라도 비효율성을 잔인하게 걸러 내야 한다’는 것이다.10)
따라서 이 같은 세계화가 가장 극적으로 작동하게 될 한․미 FTA는 애초부터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 사회적 혼란이나 희생은 무시되고 자본의 효율성과 경쟁만 관철되는 위험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처음에는 경쟁국인 일본, 중국보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11) 특히 자동차와 섬유 수출이 크게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산품에 대한 관세장벽이 평균 2%에 불과하며, 자동차는 수출 대신에 미국 현지 법인의 생산으로 전환되고, 섬유는 원사부터 국내산이어야만 혜택을 받는 것으로 타결돼 대미 주요 수출품목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한․미 FTA의 효과를 그다지 기대하기 어렵다.
한․미 FTA 협정문의 독소조항
한․미 FTA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경제 ․ 사회구조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끌려간다는 데 있다. 그것은 한․미 FTA 협정에 도입된 두 가지 독소조항 때문이다. 하나는 ‘투자자-국가 제소제도(Investor-State Claim)’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미 FTA와 상충되는 법규 제정과 행정조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역진방지제도(Ratchet System)’이다. 또한 미국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 철폐, 영리병원 및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도 2006년 보고서에서 한․미 FTA 목적에 대해 관세 장벽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관세 장벽, 곧 한국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12) 정부는 이것을 제도와 관행의 선진화라고 하지만 독소조항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는 무분별한 파생금융상품의 확산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한․미 FTA는 바로 그 미국의 파생금융상품을 한국에서도 팔 수 있게 했다. 개별상품별로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등으로 인해 몇가지 금지된 품목 이외에는 판매가 사실상 무제한 허용되었다. 전 세계가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오히려 문을 활짝 열게 된 것이다.
투자자-국가 제소제도(Investor-State Claim)
호주는 투자자에게 국가정책에 대한 제소권을 부여한 투자자-국가 제소제도를 도입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텼는데, 우리나라는 투자자를 최대한 보장하는 수준으로 타결해 주었다.
이 제도로 인해 투자자의 재산권은 물론 주관적인 기대 이익, 더 나아가 반사적 이익조차도 국가정책으로 인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제도의 심각성은 단순히 보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국가의 정책추진을 무력화 또는 마비시킬 수 있게 한 점이다. 미국 대기업이 제기하는 거액의 소송을 무시하면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재판은 국내법이 아닌 국제심판에 의해서 오직 투자자 보호를 위한 협정문을 기준으로 이뤄지게 돼 있어 공동체의 공익을 반영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미국의 무역환경정책자문위원회(TEPAC)조차도 한․미 FTA가 간접수용에 대한 투자자-국가 제소제도를 실행함에 있어 국제 중재 심판부에게 지나치게 많은 결정권과 자유재량을 부여하여 환경, 안전, 보건을 위한 미국의 법들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은 실제 우려할 만한 정도가 아니라고 하지만,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등에서는 수백여 건의 사례가 누적돼 있고, 최근 소송이 급증하는 추세이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과 달리 국가의 지원과 조정, 지도 등 지금까지 당연시해 왔던 행정관행으로 인해 제소당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투자자-국가 제소제도가 공공복지 정책에 끼칠 심대한 악영향에 대해 그 심각성을 호도하고 있다. 공중보건, 안전, 환경, 부동산 가격 안정화와 같은 정당한 공공복지를 위한 규제는 제소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며 이를 협상의 성과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협정문은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가 비차별적이어야 하며, 그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추어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하지 않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투자자는 오히려 정부조치가 차별적이거나 또는 불균형하다는 이유로 제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실제로 NAFTA에는 환경규제 조치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정부가 미국 기업에 의해 차별적 조치라는 이유만으로 제소되어 약 1,6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배상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투자자로부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소당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역진방지제도
역진방지제도, 이른바 래칫 시스템(Ratchet System, 톱니바퀴처럼 한번 물린 방향은 방향 바꾸기를 할 수 없다는 의미)도 우리의 법체계상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독소조항이다. 이 제도로 인하여, 나중에 필요하더라도 한․미 FTA와 충돌되는 규제 입법을 제정할 수 없게 된다.
판례법 국가로서 각 주(State)마다 다양한 판례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성문법 국가인 우리나라는 행정작용이 법령에 근거해야 한다. 필요한 행정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행정법령을 그때그때 고치고 마련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비준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한․미 FTA가 체결되어 비준되면 역진방지제도에 의해 신법우선의 원칙이 배제되면서 그와 충돌되는 법령은 제정하기가 거의 어렵게 된다. 잘못을 시정할 수 없도록 국가 입법권과 행정권을 제약하는 치명적인 독소조항인 것이다.
인간안정성(Human Security)에 대한 무방비
정부가 검역주권을 포기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 했을 당시 우리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항의했다. 정부는 국민저항을 일시적으로 미봉하기 위해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는 두 나라 업계의 자율규제로 수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이 경우 미국업자로부터 한국정부는 바로 제소당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공중보건을 위한 규제는 제소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고, 차별적이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규제할 수 있고, 그런 규제에 한정하여 제소에서 제외된다고 양해했다. 보건 안전에 관해 위험성이 심각하게 우려되더라도 과학적 증명이 아직 되지 않은 경우에는 규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수역사무국에 의해 광우병 통제국가로 판정받은 미국산 소에 대한 어떠한 수입규제도 광우병 발병 가능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한 제소를 당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는 각종 신물질, 화학물질이 우리의 생활환경과 먹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지만, 한․미 FTA가 체결되면 지키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한․미 FTA를 얼마나 졸속으로 체결한 것인지 그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 FTA가 협정된 후인 2008년 3월, 환경보건법을 제정하여 환경유해인자의 무해성이 최종적으로 증명되지 아니하더라도 예방적 조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보건안전을 위해 당연한 선언이고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한․미FTA가 비준되면 그 법은 사문화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한․미 FTA 비준 이후의 환경규제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하고, 필요하며, 비차별적 조치에 한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콩, 옥수수, 쌀 등의 유전자를 조작한 식품이나 유전자 변형생물체의 경우에도 한국정부는 마찬가지 이유로 규제할 수 없게 된다.
환경․보건․위생 등의 문제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국가와 지역의 문제를 넘어 피해가 지구적으로 확산되나, 반대로 국가 간 지역간 협력으로 제대로 관리하면 지구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글로벌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다.
날로 황폐해져 가는 지구촌의 생태환경이 국가 간 지역 간 상호 의존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전염병, 생태계, 환경 등의 문제는 발생 지역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 지구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높아져가는 가운데, 한․미 FTA는 이와 역행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 FTA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용인한다면 우리는 실질적으로 국익을 얻는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환경・보건・위생・안전을 지켜낼 수 없고, 투자자-국가제소 제도로 정부의 손발이 묶이는 생각지 못한 엉뚱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한・미 FTA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들
미국 민주당은 ‘2008년 대선공약’에서 FTA 정책에 대해 환경과 식품안전, 시민 건강을 지켜내지 못하고, 자국의 투자자보다는 외국투자자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며, 긴요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를 요구하는 FTA를 반대하겠다고 선언했다.13)
또한 월 스트리트 (Wall Street)로 상징되는 금융자본과 대기업뿐만이 아니라,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로 상징되는 실물경제와 중소기업을 위한 FTA협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14)
우리도 금융이 실물을 견인하고 실물이 금융을 받쳐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가 나란히 재도약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한다. 투자자에게 과도한 수단과 자유를 허용해줌으로써 국가의 적절한 행정조치에도 제동을 걸 수 있게 한다면, 각 사회구성원에게 동등한 기회 제공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자본주의 자체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한․미 FTA가 국가경제의 진로를 좌우하는 협정임에도 불구하고, 독소조항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마치 개방을 반대하거나 국익을 외면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저급한 수준의 논의가 진행돼 왔다.
한․미 FTA 협정내용을 반대한다고 해서 개방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또 개방을 찬성한다고 해서 한․미 FTA협정내용을 전부 찬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미 FTA는 단순히 무역에 관한 협정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경제․사회의 구조에 일대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로 갈 것인지에 대한 지도자의 철학적 설득이나 사회적 합의가 결여되어 있다.
월 스트리트의 기침이 세계경제를 감염시키고 있다. 특히 취약한 금융시장을 가진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경기후퇴가 즉각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구조에 영향을 주고, 거시경제운용과 주요 국가 운용수단에 대한 제약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미 FTA가 끼칠 정치․경제․사회적 영향과 변화에 대한 논의가 먼저 전개되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며, 향후 어떤 사회로 갈 것인가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9) 1973년에 출발한 달러를 기축으로 한 변동환율제가 2008년의 금융 위기에 직면하여 달러화의 불안정성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새로운 세계 통화체제를 구축하자는 주장이 부각되고 있다. 새로운 세계 통화체제를 달러를 기축으로 한 현재의 통화체제인 브레튼우즈 체제와 대비하여 신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10) Globalization views the world as one market in which the most efficient and competitive will prosper. It accepts -and welcomes- the fact that the free market will relentlessly sift the efficient from inefficient, even at the cost of economic and social dislocation.
키신저(Henry Kissinger), 'Does America Need a Foreign Policy?' , 2001
11)자유무역협정(FTA)이란 GATT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제24조 제8항(b)에서, 자유무역지대란 그 회원국을 원산지로 하는 상품에 대해 회원국들 간에 관세 및 기타 제한적인 통상규제를 철폐하여 역내무역을 자유화한다는 것을 규정한 데서 근거한다. 애초 미국 주도의 GATT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국가들이 선호했다. 그러나 2002년 칸쿤 WTO 각료회의 실패 후, 미국이 오히려 적극적이다.
한국이 FTA를 추진하면서 내세운 이유 중의 하나로 DDA협상 장기중단으로 인해 미국∙EU∙인도∙중국∙브라질 등 주요 교역국들이 FTA 추진에 가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고, 또한 미국 무역촉진권한 법(TPA)의 효력기간 내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TPA(Trade Promotion Authority)는 FTA를 촉진하기 위해 2002년 제정되어 3년간 효력이 발생하도록 한 한시법을 2005년 2년간 연장하여 2007년 6월 30일까지 효력을 가지는 무역촉진권한에 관한 법률이다. 미국 의회가 미국 행정부에 통상협상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하여 통상협상결과를 의회의 수정 없이 가부 투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원래의 FTA의 대상은 상품이었으나 1990년대 WTO협정에서 무역관련(Trade Related)이라는 개명이 도입되어 TRIMs(무역관련 투자조치 협정), TRIPs(무역관련 지적 재산권 협정) 등 경제활동의 전 영역을 포괄하도록 했다.
12) However, FTAs in which the United States participates have been more complex, reflecting the increasing complexity of bilateral and regional economic relationships in which tariffs and quotas are among the least critical issues. These FTAs cover regulations, policies, and practices that affect a broad range of economic activities.
13)We will not negotiate bilateral trade agreements that stop the government from protecting the environment, food safety, or the health of its citizens; give greater rights to foreign investors than to U. S. investors; require the privatization of our vital public services(The 2008 Democratic National Platform, 'Renewing America's Promise').
14)We need tougher negotiators on our side of the table-to strike bargains that are good not just for Wall Street but for Main street. We will negotiate bilateral trade agreements that open markets to U.S. exports and include enforceable international labor and environmental standards(The 2008 Democratic National Platform, 'Renewing America's Promise').